2011년 12월 3일 토요일

[테마 읽기-큰 건축& 소박한 건축] 야심만만 건축가와 권력이 만나면… 건물은 커진다 높아진다

↑ [조선일보]영국 밀레니엄 돔(사진 왼쪽)과 중국 CCTV 본사.
↑ [조선일보]독일 히틀러 총통관저(사진 왼쪽)와 러시아 구세주 성당.
데얀 수딕 지음|안진이 옮김 | 작가정신|540쪽|2만8000원 
60대 후반으로 심장이 약한 대통령 하샤는 무장한 나치 대원들 시선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갈 때부터 좀 떨렸다. 8주 전 완공된 총통관저는 ' 독일 제국'을 건물로 웅변하는 듯했다. 입구에 놓인 4.5m의 게르만 전사 청동상도 그랬지만, 유리창이 없는 3층짜리 벙커 건물은 더욱 그랬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대리석 홀의 길이는 173m. 높이는 9m인 커다란 홀에 당도했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의 두 배였다. 홀을 지나 또 다른 방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112평(372㎡)짜리다. 하샤는 이 방에서 체코를 포기한다는 선언문에 사인했다. 그가 돌아간 후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게 몰아붙였더니 그 늙은이가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렸어. 서명하기 직전 심장발작을 일으키더군."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 2공화국의 하샤 대통령은 베를린 총통관저를 찾아가 히틀러와 담판을 짓는 대신 항복했고, 나라가 그렇게 없어져 버렸다.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원제 The Edifice Complex)의 저자인 영국 건축비평가 데얀 수딕은 이 역사적 순간의 연출자로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와 건축주 히틀러를 꼽는다. 히틀러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널찍한 홀과 살롱이 필요해" 주문했고, 슈페어는 건물 길이는 400m나 되지만 건물 폭은 방 하나와 복도가 전부인 기형적 건물로 건축주 주문을 실현했다.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타리나 대제, 카이저 빌헬름 2세부터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를 거쳐 마오쩌둥과 차우셰스쿠, 후세인을 하나로 엮는 단어는 '거대 건축물'이었다. 거대 건축물은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의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징표다. 유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히틀러는 약 7만평(23만㎡)에 달하는 제2관저와 40만석 규모 경기장을 꿈꿨다. 스탈린은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그 상징인 '겨울 궁전'은 그대로 뒀다. 혁명가에겐 제국의 위엄이 장식으로 필요했다. 

독재자 시대가 갔어도, 비슷한 건축은 계속 나온다. 1995년 영국 베어링 증권 파산 후 경기는 바닥을 쳤고, 정권도 바뀌었다. 그러나 집권 노동당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 프로젝트를 승계했다. 세계 표준시 기준점 그리니치 반도에 대형건물을 세워 '영국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계는 영국의 자존심 리처드 로저스 경(卿)에게 맡겼다. 결국 10억파운드가 투입돼 거대한 텐트 모양의 '밀레니엄 돔'이 세워졌다. 저자는 이건 거대한 주차장으로나 유용하다며 '과대포장된 사업의 여운 혹은 숙취'라 표현했다. 

재능과 권력이 만나도 비극적 건축이 탄생하는 이유는 건축주 스스로 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빈 미술아카데미 건축과 출신인 히틀러조차 건축철학에 관해선 갈지자 행보였다. 고전주의부터 모더니즘 건축가 모두가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도 그런 이유다. 건축을 모르는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오쩌둥은 권력을 잡은 후, 톈안먼(천안문) 광장을 '인민'의 품에 돌려주고 싶어했다. 건축가 창 카이지는 10년에 걸쳐 성벽과 나무를 걷어내고 24만㎡(7만2600평)짜리 공터를 만들었다. 공사 규모로는 히틀러보다 더 통이 컸다. 저자는 광장의 뙤약볕에 서있던 인민들이 그나마 위안을 받는 공간으로 광장과 시안대로를 잇는 지하통로를 꼽았다. 

권력만 건축가를 이용한 건 아니었다. 건축가들은 권력을 이용해 열등감을 풀려고 했다. '마르크시스트, 볼셰비키, 유태인들'이라고 아무리 비방해도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슐체 나움베르크 같은 건축가는 히틀러를 동원해 그들을 압박했다. 

스탈린은 집권 후 그 유명한 '구세주성당'을 해체하고, 소비에트 궁전을 세우겠다고 했다. 건축안을 공모했다.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한 기계'란 유명한 말과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긴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도 거기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좌파로 분류됐던 르코르뷔지에는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만나려고 로비까지 했다. 

자유와 사람을 중시하는 건축으로 유명한 렘 쿨하스. 그는 미국 의 '그라운드 제로' 설계에 불참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자기 연민에 빠져 소련 공산주의자처럼 초대형 건축물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각 그는 베이징 CCTV(중앙방송) 건물을 수주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었다. 언론자유가 없는 중국 관영 방송사 건물을 짓는 걸 두고 시비가 일었다. 그는 CCTV는 곧 민영화되고 중국은 정치적 탄압을 포기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렇게도 말했다. "급진적이고 혁신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건축가들은 강력한 후원자를 필요로 하는 법." 이게 진심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기념도서관을 관통하는 허위의식과 '헌금함'을 거의 미학적으로 노골화시킨 미국의 교회건축물, 록펠러 가문과 건축가들의 야합, 식민지의 수도이전을 꾀했던 제국주의 건축가들의 편견 등 저자 데얀 수딕은 죽은 거장은 물론 현재의 거장까지를 대부분 '박살'을 내고 있다. 

건축은 지상에서 펼치는 가장 화려한 예술. 그러나 문제는 결국 '남의 돈'을 갖다 쓴다는 것이다. '건축은 시대와 공간에 대해 말해야 하지만, 영원을 꿈꿔선 안 된다'는 소박한 좌우명을 잊었던 사람들, 충돌적 가치인 예술과 돈에 얽혀든 건축가들의 매혼기(賣魂記)다. 지적으로 '씹는' 재미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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